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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24호 : 개별기사 3
  • 등록일 : 2019-09-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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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4학년)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627일부터 23일간, 생애 첫 일본 여행을 떠났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점심을 먹고, 현재 야마구치현의 위치에 해당하는 옛 조슈 번(()의 조카마치, 즉 당시 중심지였던 하기시로 이동하여 이후 시모노세키 지역까지 견학하는 총 23일의 여정이었습니다. 서암 윤세영 재단에서 마련해주신 좋은 기회에 저는 마냥 들떴습니다. 솔직히 이번 여행이 탐방을 가장한 여행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탐사에 충실했던 일정은 짧았지만, 전혀 짧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첫 일정은 하기 박물관이었습니다. 이번 답사의 첫인상과 같은 견학지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의 위상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 종종 등장했던 그는 메이지 유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실제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일본어를 읽지 못해도 어떤 인물인지 더 유심히 봤습니다.

박물관의 한쪽 벽면에는 다카스키 신사쿠,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조슈번 출신 인물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수많은 인재가 이 지방에서 나고 자랐다는 거창한 사실과, 현재 시골 동네 같은 조용한 분위기를 풍기는 하기 시의 모습이 대조되어 흥미로웠습니다. 하기시는 에도시대의 지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마을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할 정도로 문화재와 건조물이 잘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무라이와 상인들로 붐볐다고 하는 당시 조카마치의 모습을 더 잘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일정은 조선소 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인데, 첫인상은 좀 황량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러 왔는지 의아했을 정도였습니다. 방파제들 사이에 숨어있던 갯강구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을 정도니, 잘 꾸며진 일반 견학지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남아있는 역사적 사실은 절대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군함을 건조한 곳입니다. 페리 제독의 서양식 군함을 처음 본 후 이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자원을 끌어 모아 서양식 군함을 만들고자 했고, 결국 2년 후에 꿈을 실현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인들의 강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이와 반대로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외세로부터 수탈을 당한 조선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데 국가적 사명을 안고 일본으로 유학을 하러 갔던 젊은 조선 학자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비통한 심정으로 조선의 문제와 개혁의 필요를 절감했을 것입니다.

 

요시다 쇼인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쇼카손주쿠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조선소 터와 마찬가지로 메이지 유신의 중역들이 이 비좁은 공간에서 교육받았다는 사실 자체로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쇼카손주쿠가 전통적으로 명망 있는 교육기관이 아닌 쇼인 개인이 가르치던 교육 시설이라는 점입니다. 다카스키 신사쿠,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쟁쟁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쇼인과 교류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쇼인을 단순히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 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없었다면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사 여행을 하는 내내 제 마음은 안타깝고 무거웠습니다. 일본 메이지 유신 관련 유적지를 다닐 때마다 쓰라린 우리 역사가 떠올랐고, 자꾸 일본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 같은 강력한 개혁 세력들의 부재, 중국과 맞닿아 독립적이지 못했던 우리의 운명 등등. 메이지 유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개혁에 실패하고 외세에 휘둘린 우리 역사와 일본 역사가 대조되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일본에 의해 우리의 언어, 문화 등 민족성이 훼손되었고,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위안부 문제 등 아픈 상처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움을 느끼기만 해서는 더 나아갈 여지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견문을 넓히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많은 경험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를 다짐하고 행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혜택을 받는 장학생으로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누군가가 현재의 사회를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항상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2박 3일의 일정은 여행이 아니라 답사였기에 저에게 더 의미 있었습니다. 이번 일정은 특히 제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두고두고 떠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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